“요즘 제 일은 GPU를 구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타트업 기술사업개발 총괄, 브리튼 윈터로즈가 남긴 이 한 문장은 AI 산업의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냉혹한 현실을 드러냈습니다. 모두가 AI 혁명을 외치지만, 정작 혁신의 씨앗을 뿌려야 할 스타트업들은 AI 모델을 학습시킬 최소한의 기반, 즉 GPU(그래픽 처리 장치)조차 확보하지 못해 고사 직전에 내몰리고 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부품 수급 문제를 넘어섭니다. AI 산업의 미래가 소수의 거대 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는 심각한 경고입니다. 직접 업계를 들여다보며 느낀 것은, 이것이 AI 생태계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이 ‘컴퓨팅 절벽’이 AI의 미래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 그 구조적 문제를 파고들었습니다.
왜 AI 스타트업은 GPU를 손에 넣지 못하는가?
많은 이들이 GPU 부족의 원인을 단순히 ‘수요 폭증’으로 이해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상의 절반만 보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자원이 분배되는 방식에 있습니다. 현재 AI 개발 환경은 거대한 식료품 체인이 전국의 모든 농작물을 계약 재배로 선점한 뒤, 동네 작은 식당이 남은 식자재를 구하러 새벽 시장을 헤매는 상황과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싹쓸이’와 엔비디아의 독점
여기서 거대 식료품 체인은 구글, MS, 아마존, 메타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한 번에 수만, 수십만 개의 최신 AI 가속기를 엔비디아로부터 직접 구매합니다. AI 서비스의 품질이 컴퓨팅 파워와 직결되기에, 이들에게 GPU 확보는 생존을 건 군비 경쟁과 같습니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옴디아(Omdia)에 따르면, 2023년 하이퍼스케일러 8곳이 구매한 H100 GPU는 약 170만 개로, 전체 출하량의 70%에 육박했습니다.
반면, 수십, 수백 개의 GPU가 절실한 스타트업은 이들의 구매력에 밀려 기약 없는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릴 뿐입니다. MS의 담당자조차 ‘구걸’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유망 스타트업에 할당해 줄 GPU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을 방증하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은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력입니다. 옴디아의 보고서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마치 골드러시 시대에 모두가 금을 찾아 헤맬 때, 청바지와 곡괭이를 독점 공급하며 막대한 부를 쌓은 리바이 스트라우스처럼, 엔비디아는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를 손에 쥐고 시장의 규칙을 만들고 있습니다.
GPU 독점이 AI 혁신 생태계에 미치는 3가지 영향
이러한 자원의 불균형은 단순히 몇몇 스타트업의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AI 기술 생태계 전반의 건강성을 해치고, 혁신의 방향을 왜곡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로 이어집니다.
첫째, 아이디어보다 자본이 우선되는 ‘혁신의 중앙화’
과거 인터넷 시대의 혁신은 차고에서 시작됐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와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죠. 하지만 거대언어모델(LLM) 시대의 문법은 다릅니다. 이제 혁신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수천억 원에 달하는 컴퓨팅 자원을 감당할 자본력에서 나옵니다.
그 결과, 기초 모델(Foundation Model) 개발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스타트업들은 이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 모델의 API를 활용해 응용 서비스를 만드는 방식으로 내몰립니다. 이는 다양한 시도를 위축시키고, AI 기술의 발전 방향을 소수 거대 기업의 입맛에 맞게 길들일 위험을 내포합니다.
둘째, ‘컴퓨팅 부자’와 ‘컴퓨팅 빈자’의 양극화
GPU 확보 능력은 이제 기업의 경쟁력을 넘어 생존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컴퓨팅 부자(Compute-Rich) 기업들은 더 크고 정교한 모델을 만들어 시장을 선점하는 반면, 컴퓨팅 빈자(Compute-Poor) 스타트업들은 아이디어를 검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모델 학습에 수억 원의 클라우드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정작 서비스 개발과 마케팅에 쓸 자금이 바닥난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양극화는 AI 산업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특정 문화권이나 특정 문제에 특화된 작지만 효율적인 모델을 개발하려는 시도들은 컴퓨팅 자원이라는 장벽 앞에서 좌절되기 쉽습니다. 결국 우리는 소수의 거대 기업이 정의하는 획일화된 AI 서비스만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셋째, 잠재적 ‘AI 버블’의 뇌관으로 작용
현재 AI 산업에 대한 투자는 ‘미래 가치’에 대한 기대를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서비스 개발과 운영에 들어가는 막대한 인프라 비용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많은 스타트업이 의미 있는 매출을 내기도 전에 컴퓨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쓰러진다면, 투자 심리는 급격히 얼어붙을 수 있습니다.
GPU 부족 사태는 AI 서비스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비용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AI 산업 전체가 소수 인프라 기업의 결정에 좌우되는 불안정한 구조 위에 서 있음을 의미하며, 시장의 기대가 꺾이는 순간 연쇄적인 붕괴를 촉발할 수 있는 잠재적 뇌관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컴퓨팅 절벽을 넘을 대안은 없는가?
상황이 비관적이지만, 절망하기는 이릅니다. 이 거대한 장벽 앞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움직임 역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가장 주목할 흐름은 ‘모델 경량화’와 ‘효율화’ 기술입니다. 모든 문제에 초거대 모델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특정 작업에 최적화된 작고 효율적인 모델(SLM, Small Language Model)들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는 제한된 자원으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엔비디아의 대안을 찾으려는 반도체 업계의 노력도 계속됩니다. 구글의 TPU, 아마존의 트레이니움(Trainium) 같은 자체 칩 개발은 물론, 수많은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GPU의 아성에 도전하는 중입니다. 비록 단기간에 엔비디아의 생태계를 넘어서기는 어렵겠지만, 이러한 경쟁 구도는 장기적으로 시장을 더 건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MS 담당자의 “GPU 구걸”이라는 한탄이 AI 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AI가 가져올 미래는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땅이 아니라, 컴퓨팅 파워를 독점한 소수에게만 허락된 그들만의 왕국이 될지도 모릅니다.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그 기술에 접근할 기회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AI 스타트업이 GPU를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AI 스타트업이 GPU를 확보하기 어려운 주된 이유는 하이퍼스케일러(구글, MS, 아마존 등)의 대규모 선점 구매와 엔비디아의 시장 독점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스타트업은 높은 가격과 긴 대기 시간으로 인해 GPU를 구하기 힘듭니다.
GPU 독점 현상이 AI 산업의 혁신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GPU 독점은 AI 혁신을 자본 중심의 ‘중앙화’로 이끌고, ‘컴퓨팅 부자’와 ‘컴퓨팅 빈자’ 간의 양극화를 심화시킵니다. 이는 다양한 아이디어의 시도를 위축시키고, 장기적으로 AI 산업의 다양성과 건강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GPU 싹쓸이가 AI 스타트업에 미치는 구체적인 어려움은?
하이퍼스케일러의 GPU 싹쓸이는 AI 스타트업에게 최신 AI 가속기 접근을 어렵게 하고, 모델 학습 및 서비스 개발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 부족을 야기합니다. 이로 인해 스타트업은 아이디어를 검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고사할 위험에 처합니다.
엔비디아의 GPU 시장 독점은 AI 산업에 어떤 구조적 문제를 야기하나요?
엔비디아의 GPU 시장 독점은 AI 인프라 비용을 상승시키고, 시장의 규칙을 엔비디아가 주도하게 만듭니다. 이는 AI 산업 전체가 소수 인프라 기업의 결정에 좌우되는 불안정한 구조를 형성하며, 잠재적 ‘AI 버블’의 뇌관이 될 수 있습니다.
AI 컴퓨팅 절벽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나 해결책은 무엇이 있나요?
AI 컴퓨팅 절벽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모든 문제에 초거대 모델 대신 ‘모델 경량화’ 및 ‘효율화’ 기술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글 TPU, 아마존 트레이니움 등 엔비디아 대안 칩 개발 경쟁도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